영화추천 [그린북] 편견과 차별을 넘어 이해와 조화로 가는 여행
영화의 제목 <그린 북>은 1930년대에서 60년대까지 제작 출판되었던 흑인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의 이름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62년으로부터 약 백여 년 전인 1860년대부터 미국은 여러 차례 헌법 개정을 통해 노예제를 폐지하고 흑인의 시민권과 참정권을 보장해왔다. 하지만 법이 바꼈다고 해서 그전까지 오래도록 이어온 흑인을 향한 차별과 폭력이 한 번에 사라지진 않았다. 문화적 정치적 상황이 맞물리며 주와 시에 따라서는 흑인 차별을 강화하는 분리정책들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법을 어길 시에는 가혹한 처벌을 받거나 부당한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 특히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은 사전에 그들이 주의해야 할 점과 이용할 수 있는 흑인전용시설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혹시 모를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런 필요에 의해서 나온 책 <그린 북>은 미국의 인종차별의 산물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그린 북>은 이 가이드북을 따라가는 실존 인물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의 여정을 통해 인종차별 문제를 담담하지만 다층적으로 풀어가는 '버디 무비'이자 '로드 무비'이다.
'떠버리 토니'라고 불리는 토니는 중년의 나이에 번듯한 직장도 없이 클럽에서 경호원 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거친 환경에서 닥치는 대로 살아와서인지 두뇌회전이 빠르고 배짱도 있으며 법과 규칙보다는 주먹이 앞선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 수리차 집에 온 두 흑인 수리공이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토니는 흑인을 기피한다. 토니뿐만이 아니다. 토니의 집에 모인 친척 모두가 그런 인종차별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날 아침 토니의 집에 모두 모인 이유도 흑인 수리공의 방문 때문이었다. 토니 일가는 흑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토니가 버린 컵을 다시 싱크대에 올려놓는 아내 돌로레스만이 그런 편견에서 자유로워보인다. 흑인을 기피하는 토니지만 생계 때문에 흑인과 일하는 상황이 생긴다. 일하던 클럽이 내부공사로 두달 간 문을 닫게 되자 실업자가 되는데, 그런 그에게 며칠 후 흑인을 모시는 운전 기사 일자리 제안이 온 것이다.
토니가 모실 돈 셜리는 세 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지성과 이성, 교양과 학식 그리고 매너를 모두 갖춘, 흑인은 모두 가난하고 못 배우고 범죄자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있다. 비주류 하층민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와 상류층 흑인 돈의 관계는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백인=부유층+지성, 흑인=하층민+무식의 도식을 비튼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그린 북>은 백인vs흑인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보다 다층적으로 인종차별 문제에 접근한다.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 하지만 반 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종뿐만 아니라 국적, 나이, 성별, 성 정체성, 외모, 가난, 등 다양한 이유 들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차별받고 또 때로는 차별하기도 한다. 차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과 비슷한 무리와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의 꼬리를 끊을 수는 없을까? 영화는 그 해결책으로 조심스럽게 '경험'을 제시한다. 세상엔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직접 경험해봐야만 오롯이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특히 사람이 그렇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이고 사람 마음이다. 저마다의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각자의 편견을 갖고 살아가던 돈과 토니는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만나 인종차별이 극심한 '딥 사우스'로 두 달 여의 공연 투어를 떠난다. 그 여정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간다. 그 여정의 끝에서 토니와 돈 둘 모두 변해 있었다. 백인 대 흑인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서로를 경험함으로써 이해와 조화에 도달했다.
크리스마스 날 용기를 내어 토니의 집을 찾아간 돈과 그런 돈을 포옹해주는 토니와 돌레레스, 그리고 친척 모두 기꺼이 식탁에 자리를 마련해주는 인간적인 장면이 집집마다 거리마다 당연한 풍경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