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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미스터트롯 9회 리뷰 눈물샘 자극하는 역전의 드라마

 

미스터트롯 포스터

 

미스터트롯 9회에서는 준결승에 오른 14인의 개인전이 펼쳐졌습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경연 참가자들이 지금까지의 무대를 통해 경험한 자신의 부족한 부분과 한계점을 극복하려고 했다는 점과, 자신에게 씌어진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게 위해 과감한 도전을 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살려 준결승까지 살아남았지만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한 모험이었습니다. 어려운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경연자들의 과감한 결단과 치열한 노력은 그들이 받는 점수와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이렇게 열심인 사람들이 있구나, 모두가 '진'이 될 순 없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는 사람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김경민

 

미스터트롯 9회의 첫 무대로 8회 말미에 남진의 '우수'를 불러 극찬을 받은 정동원의 무대를 이어받아 예선전 신동부에 소속되어 준결승 스테이지까지 살아남은 김경민의 무대가 이어졌습니다. 김경민은 설운도의 '춘자야'를 선곡했습니다. 설운도가 2004년도에 발표한 '춘자야'는 떠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노래로 못다한 사랑에 대한 미련과 회한 등의 감정이 담긴 노래인데, 가수 남진의 첫사랑 이야기가 모티프라고 합니다. 목포의 선착장을 바라보다 영감이 떠올라 직접 작곡한 노래라고. 김경민은 이 노래를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순정파 건달의 이야기로 재해석해서 그에 걸맞는 의상을 맞췄습니다. 선굵은 외모에 올백 정장, 일수 가방, 백구두가 더해져 시장통을 건들거리며 배회하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건달로 완벽히 빙의했습니다. 김경민은 부둣가를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허세 가득하지만 절제되면서도 코믹한 제스처로 관객에게 재미를 주는 동시에 안정된 음정에 응축된 감정을 담아 호소력 진한 무대를 펼쳤습니다. 김경민의 무대가 끝나자 설운도 레전드는 자신의 노래지만 굉장히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노래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경민은 이번 무대를 통해 무겁고 딱딱하고 올드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했고, 장윤정 마스터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장윤정은 지금까지 무대 중에 최고였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여전히 성장중임을, 앞으로 더 성장할 것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습니다. 이 말 한 마디가 그동안 마음고생을 했을 김경민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 헤아리면 괜히 제 마음이 다 뭉클했습니다. 김경민은 '춘자야'로 911점을 받았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김호중

 

준결승 세 번째 도전자는 김호중이었습니다. 김호중은 성악을 전공한 참가자입니다. 폭풍 같은 성량과 고막을 물청소 해주는 듯한 시원한 고음으로 가창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호평과 함께 트로트만의 느낌을 살리지 못한다는 비평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한 단점을 누구보다 김호중 자신이 의식하고 자각했을 겁니다. 100인 예선에서 '진'에 오르고 연이은 스테이지에서도 괴물 보컬이란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미스트트롯]이 트로트에 특화된 오디션이니만큼 성악의 색을 빼고 트롯의 느낌을 싣지 못한다면 이 이상 올라가지 못하리는 점을 충분히 깨달은 김호중은 이번 무대에 그야말로 사활을 걸었습니다. 그가 선곡한 곡은 주현미의 '짝사랑'이었습니다. 얇은 음색으로 세밀한 리듬을 타며 정교한 기교를 넣어야 하는 '짝사랑'은 김호중에게는 위험한 도박이었기에 주현미 레전드도 선곡을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김호중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짝사랑'을 완전히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만족스러운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고, 최하위 점수를 받았지만 어려운 길임을 알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한 김호중의 고군분투는 제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듯합니다.

 

 

 

미스터트롯 9회 신인선

 

이번 준결승 스테이지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 경연자는 단연 신인선입니다. 그는 이전의 무대를 통해서도 가창력은 물론 창의적인 무대 기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설운도의 '쌈바의 여인'으로 한층 과감하고 강렬하게 무대를 구성한 건 물론 쌈바의 두 여인을 섭외하여 관객을 축제의 한가운데로 소환했습니다. 그의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는 경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류지광

 

훤칠한 키, 세계가 인정한 얼굴에 굵직하면서 맑은 동굴저음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류지광은 몇 번의 탈락의 위기를 거쳐 준결승 무대까지 올라왔습니다. 류지광의 한계는 명백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인 마성의 음색이 곧 단점이라는 것. 이번 무대에서 음색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가창력은 물론 트로트 가수로서의 가능성과 실력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경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류지광은 남진의 '사랑하며 살 테요'를 선곡해 의도적으로 음색을 얇게 만들어 노래에 트로트 느낌을 가미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다른 도전자들의 실력과 내공이 워낙 탄탄해서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그의 도전 만큼은 빛났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이찬원

 

다음 도전자는 앳된 얼굴과 상반되는 구수한 음색과 화려한 꺽기 그리고 풍부한 성량으로 남녀노소 전 세대에 걸쳐 두루 사랑과 지지를 얻고 있는 이찬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이찬원은 구성지면서도 신나는 노래를 불러 극찬을 받으며 결승까지 직행했습니다. 이찬원은 편향된 선곡에 변화를 주고 싶어했습니다. 잔잔하면서 울림을 줄 수 있는 노래를 찾던 중 설운도의 ' 그래서 이번엔 아주 무겁고 한이 서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으로 결정했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이산가족의 아픔과 슬픔, 기약없는 이별과 설움 등이 응축된 민족의 한이 서린 노래입니다. 가창력은 완성되어 있지만 전쟁과 이후의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이찬원에겐 분명 대단한 도전이었으며, 이 한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전달하는지가 성패의 관건이었습니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이찬원은 전매특허인 성량과 구수한 음색과 기교를 살리는 것은 물론 시대의 애절함을 절절히 전달하는 데 성공하며 방청객의 호평과 평단의 좋은 점수를 끌어냈습니다. 이찬원은 이찬원이었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김희재

 

이번 회차에서 가장 안타까움을 자애냈던 도전자는 아무래도 김희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누구보다 정확한 음정과 섬세한 퍼포먼스로 준결승까지 오른 김희재는 최악의 목상태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간절한 바람과는 다르게 낫지 않는 목과 나오지는 목소리에 경연 당일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도 스쳤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 그래도 김희재는 최대한 스스로를 추스리며 자신이 할 수 모든 걸 무대에 쏟아냈습니다. 중간중간 음정이 불안해지는 등 만족스럽지 못한 무대를 마친 김희재는 대기실로 이동하는 내내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결과는 아쉬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김희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장민호

 

김희재가 가장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참가자가 김희재라면, 가장 가슴을 졸이게 한 참가자는 장민호였습니다. 그는 올하트를 받으며 예선을 통과하고 1차 본선에서는 '진'에도 올랐으나 이후에는 다음 스테이지로 직행하지 못하고 떨어지고 살아나는 과정을 거듭하여 아슬하게 준결승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22년 차 가수 생활로 다져진 내공과 자신감은 바닥에 떨어지고 의욕도 꺽였습니다. 탈락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하며 장민호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안정된 음정에 허스키한 음색이 더해진 호소력 짙은 창법으로 가창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요즘의 정서와 감성에는 약간 맞지 않았던 점이 그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내 맘 졸이며 장민호를 응원하는 팬으로서 그의 무대를 지켜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민호의 무대는 가장 좋았습니다. 이제까지의 굵은 선을 버리고 그 위에 세련되고 얇은 선을 올린 그의 음색은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고, 감정의 경중과 호흡의 강약을 적절하게 오가는 노래는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좌절과 절망을 딛고 1위에 등극하며 화려하게 부활한 장민호의 무대는 매일 실패하는 저에게 위로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미스터트롯 9회 영탁

 

준결승 무대는 완벽한 가창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영탁에게도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전 무대에서 '막걸리 한잔'으로 전국에 막걸리 열풍을 다시 일으키며 음원차트를 올킬한 영탁의 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막걸리 한잔'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강항 캐릭터로 뜨는 바람에 그 캐릭터에 묻혀 성공하지 못하는 배우처럼, '막걸리 한잔'에 묻힐 가능성이 그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탁은 '막걸리 한잔'으로 고정된 틀을 깨고 이전의 무대에서는 보여주지 못한 감성적인 면을 전달하기 위해 어려운 곡을 선택했습니다. 주현미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은 사랑하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이가 혼자 남겨질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과 미안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응축된 노래입니다. 가사가 이미 슬프기 때문에 감정이 과하면 신파가 될 수도 있는 어려운 곡. 영탁은 주현미 레전드의 조언을 받아들입니다. 감정을 절제한 담백한 발성, 완벽한 박자감으로 리듬을 최대한 살려 노래를 했고 이는 오히려 마스터와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데 성공합니다. 이로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건 물론 이전 무대에서 1위를 기록한 장민호도 넘어섭니다. 진짜 보면 볼수록 매력 있고 노래도 잘하는 영탁. 캬~

 

 

 

미스터트롯 9회 나태주

 

이제까지 태권도와 트로트를 접목한 퍼포먼스로 사랑을 받아 준결승까지 올라온 나태주도 새로운 도전을 하였습니다. 솔직히 나태주가 준결승까지 올라온 건 예상밖이었습니다. 퍼포먼스가 강렬하고 화려했던 점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가창력에는 의심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태주 본인도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작정하고 퍼포먼스를 지우고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을 선곡해 오로지 노래만으로 승부수를 띄웁니다. '신사동 그 사람'은 여린 음색과 정교한 리듬으로 이루어진, 여자도 부르기 힘든 노래입니다. 가수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트로트를 전공하지도 않은 나태주가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는데, 뚜껑을 연 그의 무대는 반전이었습니다. 가수가 아닌 사람이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가창력을 보여준 것입니다. 아, 나태주 노래도 잘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넘치는 무대였습니다. 가창력을 더욱 갈고 닦아서 지금의 퍼포먼스 능력에 결합한다면 훌륭한 트로트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나태주의 도전에 격한 박수를 보냅니다.

 

 

 

미스터트롯 9회 임영웅

 

이제까지 흔들림 없는 완벽한 가창력과 가사전달력으로 평단과 대중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받으며 준결승까지 직행했지만, 이번 무대는 임영에게도 또 한 번의 도전이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삼시세끼 삼일 내내 먹으면 물리는 법. 임영웅의 과제는 어떻게 기존의 이미지에 새로움을 얻는가였습니다. 그렇다고 약한 퍼포먼스로 미는 건 무리수임은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 것입니다. 현명한 임영웅은 기존의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다룬 노래 대신 섬세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설운도의 '보랏빛 엽서'를 선곡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는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안타까운 이별에 아파하는 이의 감정을 장인의 솜씨로 한 음 한 음에 담아냈고, 그 애절한 한 음 한 음은 듣는 이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습니다. 그렇게 오로지 노래만으로 역대급 무대를 만들며 장민호를 이긴 영탁을 누르고 1위에 올랐습니다.

 

이렇듯 승패에 상관없이 경연자들이 모두 타인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며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미스터트롯 9회는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타인의 실수에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고 경쟁자의 좋은 점수에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는 모습은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이 아마도 <미스터트롯>을 한국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위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큰 감동과 재미는 물론 도전하는 자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미스터트롯]의 모든 참가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