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희의 비열한 수작으로 이태원 건물에서 쫓겨난 박새로이는 장가를 무너뜨리는 계획이 늦춰지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를 해야 했다. 다른 건물을 임차해도 장대희는 계속 건물을 사들이고 박새로이를 거리로 내쫓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박새로이는 장가 강민정 전무에게 넣어둔 투자금을 회수해 경리단길에 있는 건물을 아예 사버린다. 단밤 식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건물을 단장해서 재오픈하지만 드라마의 현시점에서 경리단길은 죽은 거리. 박새로이가 산 건물도 1년마다 망해나가는 (명당에 반대되는)암당이다. 가게를 살리기 위해 조이서는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녀의 역량으로도 이태원 수준으로 매출을 회복하기엔 유동인구가 너무 적은 게 현실. 가게를 살릴 방안을 찾던 중 박새로이는 가게에 놀러온 홍사장의 일화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가게 영업 대신 경리단길 거리 자체를 살리기로 한 것. 그러기 위해 박새로이는 같은 거리에 있는 가게들을 도와준다. 젊은 감성과 최신 감각으로 메뉴도 바꿔주고 동선에 맞게 테이블도 배치해주고 간판도 보기 좋게 고친다. 조이서가 보기엔 남 좋은 일만 시키는 박새로이가 답답하기만 한데, 박새로이의 그 바보짓 덕분일까. 죽은 경리단길이 서서히 살아나고 박새로이의 평판도 좋아진다. 어떻게 보면 박새로이의 이런 행동은 불순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건 위선이니까. 하지만 위선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자신의 이익과 심적 만족을 위해 타인을 돕고 그 도움이 자신에게 돌아와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의 본질은 아닐까. 내 이익을 위해 남을 돕는 게 윤리적인가 하는 물음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한다면 서서히 살아나는 경리단길처럼 우리 사는 세상도 조금은 살만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박새로이처럼 몽상적이고 이상적인 공상일지도 모르겠다만.
이번 9회에서는 장대희와 조이서의 만남도 그려졌다. 조이서는 장대희의 세미나에 참석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는 장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장사에 있어서 사장님에게도 이런 신념이 있을까요?" 조이서의 질문에 장대희는 박새로이의 신념을 한낱 젊은이의 치기어린 낭만으로 치부한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해도 사전적 정의가 그렇듯 장사란 이익을 얻기 위해 하는 거지요." 이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익을 얻는 과정이 장대희처럼 불순하다면 그의 신념은 이기적 자본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장대희와 박새로이의 대립은 이기주의와 공리주의의 대결인지도 모르겠다. 건물 뺐기에 실패한 장대희는 자신의 세미나에 참석한 조이서를 보고 즉석에서 또 음흉한 계략을 생각해낸다. '장사는 사람이다'는 박새로이의 신념이 아니꼬왔던 차에 이제 사람을 빼앗기로 한 것. 조이서는 단밤을 이끄는 책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조이서를 빼올 수 있다면 단밤이 스스로 무너지리라는 건 불보듯 뻔하다. 하지만 조이서가 누군가. 사랑과 성공을 위해 박새로이에게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올인한 천재다. 장가와 박새로이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 조이서는 스카웃을 위해 찾아온 장근원을 놓치지 않는다. 허세와 허영으로 가득찬 장근원의 심리적 빈틈을 파고들어 그가 자기 입으로 그날의 진실을 불게 만든다. 그 전에 명함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척 녹음 어플을 켜놓은 걸 잊지 않는 주도면밀한 조이서. 장근원은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을 띄워주는 공치사에 취해서 저의 치부를 술술 분다. 그 말들은 그날의 진실이 되어 조이서의 폰에 기록되었다. '이서야,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강제로 폰을 빼앗으려는 장근원에게 커피 싸다구를 날리는 장면은 사이다샷.
조이서가 박새로이를 위해 이런저런 마음고생 몸고생 하는 줄도 모르고, 박새로이는 오수아와 태평하게 연애모드를 즐기고 있다. 물질적 성공도 박새로이에 대한 미련도 놓지 못하는 오수아는 오늘도 진부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만약 장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이 말은 아무 의미 없다. '만약 내게 날개가 있다면, 너에게 날아갈 텐데.'라는 영문법의 대표적 가정법과 다를 게 없다. 지금 마음이 없어서, 혹은 딴 애인을 만나고 있어서 가지 않겠다는 바람둥이 화법에 불과하다. 날개가 없어 못 오나? 마음이 없어 못 오지. 마음만 있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택시로 쏘는 게 사랑이다. 당장 손에 쥔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여유는 놓고 싶지 않고 잘생기고 믿음직한 박새로이는 욕심나는 오수아가 밉상인 이유다. 그런데 박새로이는 또 등신같이 그런 오수아에게 일편단심. "네가 장가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 관계는 네가 정하는 거야." 사람의 조건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박새로이다운 멘트이다. 이처럼 일편단심인 박새로이가 오수아에 대한 마음을 접고 조이서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계기와 과정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오수아가 박새로이에 대한 마음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는 사이 눈치 없는 장근원은 자꾸 그녀에게 들이댄다. 박새로이로를 좋아하지는 않다는 말이 지를 좋아한다는 뜻은 아닌데, 멍청한 장근원. 하지만 오수아는 장근원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장근원이 박새로이의 아버지를 사고로 죽이고 그에 대해 정당한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진짜 이유는 비겁하고 비열한 장근원과 자신이 끔찍하게 닮아서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자신이 증인이 되어 박새로이의 편에 섰다면 박새로이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오수아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박새로이를 배신했다. 장근원은 어둡고 비열한 오수아 자신의 본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인 것이다. 사람은 이질적인 대상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데, 동질적인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진 않는다. 자신과 비슷한 것, 그것이 부정적일 때는 혐오하게 된다. 부정적인 자신을 부정해서 자신을 긍정하는 기제이다. 오수아가 장근원을 부정하는 건 결국 자기 부정이며,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긍정해보려는 눈물 겨운 몸부림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늘 실패하기에 박새로이의 마음을 선뜻 받아줄 수 없다.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수아도 참 피곤하게 사는 인물이다.
한편 개인 가게였던 단밤은 본격적으로 법인이 되었다. 작명 회의 끝에 이태원 클라쓰의 약자 I.C로 정해졌다. 법인을 만들고 단밤 식구들은 창립멤버가 되어 각자 지분을 갖게 되었다. 법인명 '이태원 클라쓰'에는 자유가 억업된 3년 감방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박새로이가 처음으로 조우했던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감각과 감정이 담겨 있다. 국적, 인종, 외모 등 외적인 건 물론 내적 취향에도 상관 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모여들고 즐기는 공간. 그런 세상이 박새로이의 이상일 것이다. 박새로이는 식구들과 함께 그런 I.C를 만들고 아버지의 복수도 이룰 수 있을지. 그리고 박새로이를 만나기 전에는 각자 고독하고 무료하고 비루한 삶을 살던 이들이 박새로이와 함께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해갈지. 투박하고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묵직한 걸음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이야기와 결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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