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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클라쓰 4회 리뷰 결정론 vs 자유의지론


철학에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 있다. 두 이론은 다시 세부적으로 나뉘는데, 큰 틀에서 보면 전자는 인간의 미래는 결정지어져 있다는 입장이고, 후자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태원 클라쓰 4회에서는 최승권과 박새로이의 만남을 통해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 대립한다.


"우리 같은 것들 공부해봐야 쓸 데도 없고."라고 말하는 최승권은 강한 결정론주의자이다. 승권은 건달 생활을 전전하는 자신의 현재를 세상 탓으로 돌린다. 가난해서, 공부 못해서, 할 줄 아는 게 주먹 쓰는 것밖에 없어서 건달이 되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거라고 현실에 굴복한다. 그렇게 내일을 체념한다.


"가난해서, 못 배워서, 범죄자라서 안 된다고, 안 될 거라고 미리 정해놓고 그래서 뭘 하겠어요? 해 보고 판단해야지."라고 말하는 박새로이는 강한 자유의지론자이다. 그는 전과자가 된 현실의 책임을 세상에 돌리지 않는다. 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걸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음을 인정한다. 과거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현재를 지금 당장 바꿀 순 없지만 내일의 현재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나하나 묵묵하게 실행한다.


철학사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이 강하게 대립했듯이 최승권과 박새로이도 거칠게 부딪힌다. 최승권은 자신을 설교하는 듯한 박새로이가 마음에 들지 않고, 박새로이는 저의 논리를 강요하는 최승권에게 강한 거부감을 표출한다. 둘의 싸움은 당장은 결판이 나지 않는다. 누가 옳을까 알게 되는 건 수 년의 시간이 지난 후이다.


감옥 출소 후 최승권과 박새로이는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다 이태원에서 재회한다. 결정론주의자인 최승권은 감옥에 들어오기 전과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산다. 자유의지론자인 박새로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런 박새로이의 모습에 승권은 충격을 먹는다. 승권은 박새로이를 현실을 모르고 허황된 꿈이나 쫓는 애송이로 여겼는데, 자신의 꿈을 이룬 박새로이 앞에서 승권은 진짜 애송이는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승권은 새로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승권과 새로이의 '시간의 농도는 너무도 달랐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 무엇이 옳을까? 결국 둘 다 옳은 게 아닐까. 승권과 새로이 모두 자신의 믿음대로 살고 있으므로. 둘 중 어느 이론이 맞느냐가 아니라, 결정론을 믿는 사람은 결정론대로 살고 자유의지론을 믿는 사람은 자유의지론대로 사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정답이 아닐까. 결정론이 모든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론도 하나의 선택이다. 최승권은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결정론을 선택했다. 박새로이는 결정론을 부정하고 자유의지론을 선택했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오늘은 그런 선택들의 결과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된다고 생각하든 안 된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은 옳다'고 어느 사상가는 말했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결정론을 선택하든 자유의지론을 선택하든 당신의 선택은 옳다'가 될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걸 이루기 위한 선택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게 아닐까.


그러한 메시지의 상징처럼 조이서는 잠수대교에서 동전을 던진다. 앞면이 나오면 엄마의 말을 따르고 뒷면이 나오면 자신의 충동을 따를 것. 공중에 던져진 동전은 허고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조이서의 손을 벗어나 강물에 빠진다. 어쩌면 조이서가 부러 놓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은 동전으로 은유되는 세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임을 조이서는 잘 알고 있기에.


이태원 클라쓰 4회를 보면서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를 정말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연출과 음악, 템포, 순간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까지, 무엇하나 버릴 게 없다. 특히 김다미 분 연기의 흡입력이 발군이다. 1분 1초 드라마가 끝나가는 게 아쉬울 정도. 오랜만에 만나는 웰메이드 드라마다.